2층에서 본 풍경

어린시절 우리집은 가난했습니다.

시 쓰는 아버지는 돈이라곤 모르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데다 형제까지 많아 살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.

그래서 나는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차마 사 달라는 말을 입밖에 내지 못해 늘 속으로만 우물대곤 했습니다.

그러던 어느 날, 숙제를 하고 있는데 창밖에서 친구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.

“동규야, 노올자!”

나는 빼꼼이 창문을 열고 말했습니다.

“어…나, 지금 숙제해야 되는데……너 혼자 놀아!미안해.”

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친구는 몸을 한 바퀴 빙 돌리며 말했습니다.

녀석의 속셈은 따로 있었습니다.

“하하, 나 가방 샀다. 이거 봐라. 하하하 하하하.”

친구는 새로 산 가방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.

“좋겠다…잘 가……”

나는 친구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습니다.

“히히, 너도 가방 사 달라고 그래. 나 간다…안녕!”

친구는 신나게 손을 흔들며 집으로 갔습니다.

나는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.

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친구의 새 가방이 너무나 부럽고 내 낡은 책보가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 없었습니다.

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어머니에게 조심스레 말했습니다.

“엄마…나도…가방 사 주면 안 돼요?”

“가방?그래…크리스마스 때 사 주마.”

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.

봄부터 가을까지 뭘 사달라고 하면 어머니는 언제나 크리스마스에 사 줄 것을 약속하며 미루곤 했는데 우리 형제들은 늘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기다렸습니다.

부모님은 자식들과의 약속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.

그해 크리스마스에도 나는 어김없이 새 가방을 선물로 받았습니다.

그렇게 세월이 흘러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.

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진 어느 날, 아버지는 방안에 우리 다섯 형제를 빙 둘러 앉힌 뒤 원하는 선물을 말하도록 했습니다.

언제나처럼 맨 아랫동생이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하고, 아버지는 그것을 노트에 적었습니다.

“응…저는 막대사탕요.”

막내는 막대사탕을, 넷째는 유리구슬, 셋째는 스웨터 였습니다.

이제 둘째 여동생 차례가 되었습니다.

여동생은 자기 차례가 오자마자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.

“저는 털외투 사 주세요!”

순간 어머니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고 아버지도 얼굴이 굳어졌습니다.

나는 연필을 들고 있는 아버지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습니다.

그 순간 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.

가죽구두를 사 달랠 작정이던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을 바꾸고 말았습니다.

“그래 동규 너는?”

“저…저…저는…털장갑요.”

그날 밤 나는 방에 틀어박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속에서 치미는 설움을 꾹꾹 눌러 삼키며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.

그런데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습니다.

아버지였습니다. 아버지는 내 이불을 들추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목멘 소리로 말했습니다.

“이눔이…철이 들어서…철이…들어서……….”

그해 크리스마스에 나는 털장갑을 선물로 받았습니다.

장갑 속에는 어머니가 쓴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.

‘아빠 엄마를 사랑하는 동규야. 하느님이 백배 천배 축복을 주실 거야.’

나는 그 장갑을 껴 보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.

비록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 편지 속 어머니의 사랑과 ‘이눔이 철이 들어서, 철이 들어서……’ 하시던 아버지의 말 한마디야말로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.

– 아주 아주 오래전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서
– photo : https://www.flickr.com/photos/wwarby/11532900356/


저작자 표시
신고

 

 

댓글이 없습니다.


 

 

티스토리 툴바